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국-이란 관계 (문단 편집) === 20 세기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BP plc)] 20세기 초 영국의 사업가 녹스 다시가 카자르 왕족들에게 뇌물을 찔러주어 '''석유를 60년 동안 무상으로 채굴할 권리'''를 인정받은 후, 이란에서 유정을 개발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BP plc|앵글로 페르시안 오일 컴퍼니]] 문서 참조.[* 20세기 중동 석유 개발사에서 미국은 주로 걸프 지역에 진출하였고, 영국은 이란에 집중하였다. 서로 일종의 나와바리로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로열 더치 쉘]]이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석유 개발로 시작한 회사라면 브리티시 페트롤리움은 앙글로-페르시안 석유회사라는 석유 탐사회사에서 시작한 회사다. 물론 중동이 본격적으로 세계 석유시장에서 본좌 자리에 오른 것은 최소한 1950년대 이후이다. 그전에는 오랫동안 미국이 세계 제1의 산유국이었다.] 1919년에는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이란을 보호령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때 이란에서는 민중의 반영감정이 부각되었고, 당시 육군 장교였던 레자 칸(Reza Khan)이 이를 기반으로 세를 모아 기존의 [[카자르 왕조]]를 몰아내고 새로운 왕조인 [[팔라비 왕조]]를 열고 자신은 초대 왕인 [[레자 샤 팔라비]]로 즉위했다. 하지만 레자 왕은 1941년 이란내 이권을 노린 영국과 소련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축출당하고 외지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후 즉위하게된 아들 무하마드 팔레비는 친서방 행보를 보였다. 반서방주의를 내세우는 [[모하마드 모사데크]](Mohammad Mossadegh)의 정치세력에 위협을 느끼고 모사데크를 총리로 임명했는데 이때 모사데크는 이란 내에서 이권을 장악한 서방회사들을 몰아내기 시작한다. 당연히 [[유전]]을 개발하여 막대한 이익을 취하던 영국이 가만히 있지 않았고 외교갈등으로 번져, 급기야 1952년 영국과 단교 선언까지 했다. 결국 영국과 서방의 공작으로 모사데크는 실각했다. 이후 팔레비 왕조가 지배하는 이란은 친서방국가로써 영국은 상호방위조약까지 맺을 정도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반서방주의를 내세우는 호메이니가 이란을 장악하면서 외교관계가 반전되었다. 1979년 영국과 이란은 다시 관계를 단절하였다. 1980년 [[님로드 작전|영국 주재 이란대사관 인질극 사건]] 당시 영국이 SAS를 투입해 인질극을 벌이던 아라비스탄 저항조직을 소탕하고, 성공적으로 이란인들을 구출하면서 영국은 서방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이란과 외교적 활로를 연 국가로 남게 되었고 1988년 다시 수교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